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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원인

7년간의 전쟁! 임진왜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이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의 에끼(文祿慶長の役)>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이라 부른다.

예로부터 일본은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의지가 대단히 집요하였는데, 임진왜란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910년 8월 22일, 치욕의 한일합병조약(韓日合倂條約)이 조인되던 날 밤에 그 주역을 맡았던 데라우치(寺內正毅) 통감은 축배를 들며 “가토(家藤淸正)와 고니시(小西行長)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라고 즉흥시를 읊었다고 한다. 이에 곁에 있던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한 심복이 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땅 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라고 읊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침략을 앞둔 일본인의 본심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치밀한 계획하에 벌어진 일본의 조선침략 전쟁이다. 우리나라로 보아서는 외세의 침략에 항거한 단순 국지적(局地的)인 전쟁이지만, 이 전쟁에서 당사자인 조선 · 일본 뿐만 아니라 명나라 등 동아시아 삼국이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벌였던 전쟁이기에 국제전쟁의 성격을 지닌다.

이 전쟁으로 동아시아 삼국은 승자ㆍ패자라 할 것 없이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정권이 붕괴하고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집권하였으며, 명나라도 전쟁 후유증으로 점차 쇠퇴하여 여진(女眞) 세력에 대륙 패권 장악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특히 조선은 전쟁이 한반도에서 7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에 국토가 황폐화되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후 조선은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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