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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제도

조선의 수군 개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일찍부터 수군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수군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고구려가 광개토왕 때 한반도 남부로 진출하면서 서해를 제압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백제도 근초고왕 이후 바닷길을 통해 중국 및 일본과 교류를 하였고, 신라에는 선부(船府)라는 관청이 있었다는 사실 등을 통해 수군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9세기 통일신라의 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을 완도에 설치하여 수군 기지로 삼았으며, 10세기 초 고려는 강력한 수군을 보유하여 서해안을 제압하고 남쪽에 있던 후백제의 영토[羅州]를 점거할 수 있었다. 고려 말에도 수군의 활동은 왕성하여 14세기 후반 최무선(崔茂宣)은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화약무기를 개발, 진포(鎭浦 : 지금의 錦江 입구)에서 왜선 500여 척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제도적으로 해상 방어를 전담하는 수군이 확립되어 육군과는 다른 형태의 독립된 군대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이다. 그 이전까지의 수군은 육군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들어와 수군이 발전하게 된 것은 고려 말 왜구의 빈번한 침입으로 수군이 재정비되었던 데서 비롯하였다.
조선 건국 초에 수군은 선군(船軍) 또는 기선군(騎船軍) 등으로 불리면서 그 군액(軍額)이 차츰 확장되었다. 세종 때에 이르면 군액과 함께 병선(兵船)ㆍ각포설진(各浦設鎭) 등으로 수군 규모와 편제가 제도상으로 정비되었다.
이후 조선 최대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연전연승을 거둬 조선이 전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조선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순신의 탁월한 전술과 더불어 조선 수군의 전선(戰船)화기(火器)가 일본 수군보다 우월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조선 수군은 경상ㆍ충청ㆍ전라 3도의 수군을 통합하여 함대를 편성해야 할 필요에서 전란 중에 통제영(統制營)을 설치하고, 수군통제사의 지휘를 받는 연합함대를 편성하였다. 이러한 수군 제도는 1627년(인조 5년) 후금(後金)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화도에 설치한 통어영(統禦營)과 함께 후기까지 존속하였다.

수군의 역사

삼국ㆍ고려시대의 수군

넓은 바다와 긴 해안선을 끼고 살아온 우리 민족은 오랜 바다생활의 경험과 생산력의 발전에 기초하여 배를 만들어 바다에 진출하여 해상활동의 풍부한 경험을 축적하였다.
수군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삼국통일 후 당군 축출에 신라 수군의 활동이 컸다든지, 장보고의 청해진 활동, 고려태조의 수군이 전라도 해상을 제압함으로써 후백제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이후 수군은 상당히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도부서를 중심으로 수군이 조직되었고 동해에 출몰하는 여진의 해구를 격멸하였다든가, 몽골 침입 때의 강화천도, 몽골 지배하의 일본원정 등으로 보아 고려 수군의 활동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수군은 여말·선초의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정비·강화되었다. 고려말 왜구는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 침입하여 약탈, 살인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조운의 불통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는 왜구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대책을 강구하여 양광도와 전라도에 안무사를 파견하였다. 그리고 우왕 때에는 최무선에 의해 전함이 건조하기도 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년)에는 3정을 1호로 삼고 수군 1인을 충정케 하였다. 이를 가리켜 반계 유형원은 ‘아동주사지설시차(我東舟師之設始此)’라고 하여 조선시대 수군이 설치된 시초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수군은 고려말 공민왕 말엽부터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선군을 확보하고 전함을 건조하면서 만호, 천호 중심의 수군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제도적인 조치를 통해 체계적인 수군의 조직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에야 가능하였다.

조선의 수군

조선 태조 6년(1397)에 각도의 연해거점 15개 지역에 진을 만들고 첨절제사로 하여금 군대를 통솔케 하였으며, 다음 해에 만호, 천호, 백호 등 수군직의 품계를 만들었다. 태종때에는 수군도절제사를 두었는데, 세종 2년(1420)에 병마도절제사로 바꾸고 그 이듬해에 수군도안무처치사를 두어 수군의 군무를 맡겼다. 이로써 수군의 독자적인 지휘체제가 세워졌다.
조선 초기의 지방 군사조직은 세조때에 새로이 진관체제로 개편되면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으나 수군체제는 종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진관체제 이전에 수군절도사를 최고지휘관으로 하여 각 포진에 만호 등 지휘체계가 성립되어 있었으며, 일정 군액의 수군과 병선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국대전』에는 수군도 진관체제에 따라 각 도마다 주진ㆍ거진ㆍ제진으로 편제되어, 주진에는 수군절도사, 거진에는 수군첨절제사, 제진에는 만호가 배속되어 있었다. 그 뒤 1593년(선조 26)에는 통제영을 두어 경상도ㆍ전라도ㆍ충청도의 수군을 통제사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하여 해상 방어를 강화하였고, 1627년(인조 5)에는 수도권 방위를 위하여 강화에 통어영을 두어 경기도·충청도·황해도의 수군을 통솔하게 하였다.『경국대전』에 기록된 수군의 병력은 48,800명으로 연해민만 아니라 산군인도 충원되었으며, ‘2번1삭상체(二番一朔廂遞)’에 의하여 1개월 교대로 1년에 6개월을 복무하였다. 병선은 수군의 해상근무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로서, 병선의 건조를 위해 초기에는 전선사를 두었으나 뒤에는 비변사에서 이를 담당하였다.

조선시대 수군제도
조선전기
(『경국대전』, 1485)
임진왜란시
(1593)
조선후기
(1627)
통제사 - 통제영 통어영 통제영 통어영
수군절도사 주진(경상, 전라, 충청, 경기, 황해) 주진(경상, 전라, 충청) 주진(경기, 황해) 주진(경상, 전라, 충청) 주진(경기, 황해, 충청)
수군첨절제사 거진 거진 거진 거진 거진
만호 제진 제진 제진 제진 제진
수군병력 : 48,800명 수군병력 : 91,67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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