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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함선 판옥선

판옥선은 조선시대 명종 10년에 처음 개발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전투용 함선이다. 그러나 개발 당시 구조적인 특징에 의해 붙여졌던 판옥선이란 명칭은 이후 기능적인 명칭인 전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원래 조선 초기의 군선은 맹선(猛船)이었는데 삼포왜란 후 재래식 군선인 맹선으로는 종래와는 달리 화기로 무장한 왜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새롭게 만든 전선이었다. 판옥선은 거북선이 그랬던 것처럼 임진왜란 직전인 1555년(명종 10년) 처음 나타난다.

판옥선 외부 모형

조선 초기의 군선 제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3종류가 보인다. 즉 대선(大船), 중대선(中大船), 중선(中船), 병선(兵船), 쾌선(快船), 맹선(孟船), 중맹선(中孟船), 별선(別船), 무군선(無軍船), 선(船), 추왜별맹선(追倭別孟船), 추왜별선(追倭別船), 왜별선(委別船)이다. 이처럼 다양한 군선이 있었지만, 중추적인 군선은 대선, 중대선, 중선이었다.

이러한 군선의 제도는 세조 때에 이르러 맹선 제도로 획일화되어 합리적인 운영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맹선 제도는 법제화되어『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리게 되는데,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의 세 종류가 있다. 이러한 맹선 체제가 판옥선이 등장하기 이전 조선의 군선 체제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맹선의 규모는 대맹선이 수군 80명, 중맹선이 수군 60명, 소맹선이 수군 30명을 탑재하였다. 맹선의 형태는 상장이나 누각이 없는 평선(平船)으로 추정될 뿐이며, 그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조선 초기에 어느 정도 진정되었던 왜구가 16세기에 이르면 대거 준동하기 시작하였다. 1510년(중종 5년) 4월에 제포와 부산포에 거주하던 왜인이 대마도와 연계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른바 삼포왜란은 왜구 준동의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522년(중종 17년) 6월에 왜선 12척이 전라도 신달량에 내침하였고, 인근의 초도, 보길도, 추자도를 연이어 침범하였다. 1523년 5월에는 황해도 풍천에, 6월에는 충청도 홍주에 침범하였다. 1522ㆍ23년의 이와 같은 왜구들의 침입에서 조선의 맹선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1541년(중종 36년)에 이르면 왜구가 더욱 성해지기 시작하는데, 그 해 6월에 왜선 1척이 경상도 제포 근처에 나타나고, 마침내 1544년(중종 39년) 4월에 왜선 20여척이 사량진을 침략하였다. 그리고 1552년(명종 7년) 6월에는 제주도를, 1553년 6월에는 진도, 제주도 등을, 그리고 명종 9년 6월에는 또다시 제주도를 침범하였다. 이어서 1555년(명종 10년)에 왜적들은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 대한 대규모의 침략을 감행하였는데, 이를 흔히 을묘왜변이라 일컫는다. 그 해 5월에서 6월 사이에 왜선 70여척이 전라도 달량포에 상륙하여 달량진성을 함락하고, 강진, 장흥, 영암까지 침범하였다.

삼포왜란에서 을묘왜변에 이르기까지 왜선들이 연안을 횡행하여도 조선 수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것은 크기가 커지고 선상(船上)에 방패를 설치하는 등 왜선의 구조가 개선되어 우리의 총통으로 격파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조선으로서는 왜구들의 함선을 대적할 수 있는 새로운 함선의 개발이 절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출현하게 된 것이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의 명칭이 문헌 기록으로 처음 나타나는 것은 『명종실록』12년(1557) 4월 기사로, 전라도 감사가 연해안에 배치된 판옥선이 폭풍에 모두 떠내려갔음을 보고한 내용이다. 이후 1619년(광해군 11년)까지 『조선왕조실록』에 판옥선에 대한 언급이 20여 차례 나타난다. 이것으로 볼 때 판옥선은 1557년 이전의 멀지 않은 시기에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판옥선이란 갑판이 한 층인 평선 위에 판옥 즉, 상갑판을 얹은 선박을 의미한다.

그런데 1555년(명종 10년) 9월에 왕이 새로 만든 병선을 시험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등장한다. 이 때 국왕이 임석하여 시험했던 새로운 군선이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동장하자마자 대량으로 건조되었다. 1566년(명종 21년) 경에는 그 척수를 감축해야 할 만큼 많아지고, 맹선을 대신하여 주력 군선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판옥선의 활약이 돋보인 것은 임진왜란 기간 동안 발생한 해전이다. 이순신이 거느린 판옥선 24척이 옥포해전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이후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끈 요인은 이순신의 탁월한 지휘통솔과 전략 전술, 그리고 일본 함선보다 더 크고 총통을 탑재한 판옥선의 역할을 들 수 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으로 크기도 일본 군선보다 더 컸고, 그 선제도 우월하여 압도적인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판옥선은 임진왜란 때는 판옥전선 혹은 전선(전선)으로도 불리었고, 또한 조선후기의 군선인 전선(戰船)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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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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